한국 vs 우루과이 월드컵 16강전 관전평

 우리나라가 간만에 수중전을 펼쳤기 때문에

사실 어떤일이 일어나도 뭐라하기 힘든 경기였다.

수중전에는 누가뭐래도 변수가 많은데, 거기에 더해서

열악한 남아공의 그라운드 상황을 봐서도 그 변수는 더욱 증폭되기 때문이다.

 

포인트 1.

박주영의 프리킥

공이 지난 나이지리아 전 때처럼 궤적을 그리는 것을 보고

'설마?' 했다가 나온 탄식이 뼈아팠다.

박주영은 정말정말 잘찼다... 그러나 운이 없었을 뿐이었다.

 

포인트 2.

1초 느린 판단

비때문이었을까 부부젤라소리 때문이었을까...

적 공격진 - 수비진 (측면에 적의 크로스) - 골키퍼

이 상황에서 크로스는 힘없이 수비진과 골키퍼 사이로 향했고, 그것이 빠르고

날카로운 크로스는 아니었다.  그 상황에서는 수비진이 걷어내고 그러는 것보다는

골키퍼가 공을 잡아서 다시 나갈 때 어느 수비수에게 공을 줄 지, 아니면 롱킥을 할지

가 수비수들 머리속에서 떠올랐을 것이다.  괜히 공을 걷어낸다고 깝치다가는

소위 '자살 어시스트'나 쓸데없는 코너킥을 허용할 수 있으니 그냥 손을 쓸 수 있는

골키퍼에게 안전한 처리를 하게 하는게 나았다.

그런데 그 골키퍼가 늦게 나와서 공을 반대쪽으로 흘려보낼 지 예측할 수 있는

선수가 있었다면 나는 칸나바로나 비디치나 루시우를 몰아내고 그 선수를 세계

최고의 수비수로 인정하겠다.  정성룡의 판단 미스가 뼈아팠다.

 

포인트 3.

박지성의 헤딩 슛

아마 허정무 감독은 차두리와 이영표에게 적극적인 양쪽 오버래핑을 주문했을 것이다.

다소 실점의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아르헨전에서 얻은 교훈을 여기서 실천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것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차두리가 다소 먼저 활발히 나가고, 거기에 상대가 적응하니 이어서 이영표가 활발히 나가고

그래서 다시 이영표에게 적응되니 이제는 중앙의 박지성이 침투하고 다시 이청용이 애프터

쇄도하고 ... 이 파상공세는 가히 유럽의 축구강국들에 비견할 공격력이었다.

차두리의 크로스에 이은 박지성의 헤딩슛이 바로 그 정점을 찍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쉽게 골은 터지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박지성 있음에 언제나 우리보다 한 클래스 높은 팀을 상대로 이길 가능성을

꿈꿀 수 있따는 것을 확인한 시간대였다.  박지성은 맨유의 별명대로 '습격자'였다.

 

포인트 4.

이동국투입

4-2-3-1의 공격형이 4-2-2-2의 공격형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당연히 미들진은 중앙으로 모이고 측면은 윙백들에게 전담하고 안에서 한명의 타겟형

스트라이커와 한명의 쉐도우 스트라이커를 첨병으로 골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그 때까지와 다른 타입의 공격에 우루과이의 수비에 미미한 균열이 보였따.

 

포인트 5.

이청용의 골

본선에서 3경기동안 단 한 골도 허용하지 않았던 우루과이가 최초로 허용한 골이었다.

사실 박주영이 혼자서 적진 중앙에서 볼을 간수해서 결정적인 패스를 연결하는

장면이 간간히 나왔는데, 거기다가 우루과이에서 잘 모르는 포스트 플레이어가

더해지니 순간적으로 포스트에서 우위가 생겼고, 그 틈을 젊은 이청용은 결코 놓치지

않았다.  그 때의 한국국민들의 심장 박동수가 평균 몇 비트로 뛰었을지는 오직 신만이

알고 계시리라.

 

포인트 6.

김정우의 패스미스

동점의 긴장감 속에서 양팀의 선수들은 극히 미미한 흐름이 시합을 결정짓는 다는

것을 다들 근거는 없지만 확신하고 있었으리라.  모두가 다 2-1 승부의 냄새를 읽고

외나무 다리와 같은 긴장감을 느꼈을 것이다.  거기서는 마인드 컨트롤에서 승부가

나는데, 그때까지 잘 해오던 김정우도 여기서 그 끈을 놓친 것일까.

아니면 비에 공이 미끄러 진 것일까...

이 장면에서 내가 우리의 패배를 읽은 것은 우연이 아닐것이다.

실점을 허용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적의 공세에 다소 위축되었다는 것이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포인트 7.

수아레스의 골

아마 이것이 박주영과 수아레스의 차이일 것이다.

프랑스 리그와 네덜란드 리그의 위상은 동급이라고 볼 수 있다.

프랑스 리그의 상위 득점 랭커와 네덜란드 리그의 최고 득점자의 한 끝 차이는 이것이

아니었을까.  바로 포스트 중심축을 기준으로 5센티 밖과 5센티 안의 차이...

아무것도 아닌 차이겠지만, 그것이 한 경기를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 수비의 실책은 없었다.  수비수들의 대인마크는 제 위치를

잡고 있었고, 수아레스를 막았어야 했을 위치는 전속력으로 홈으로 돌아오는 공격수

들에게 돌아갈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골키퍼의 미스도 절대 아니었다. 

수아레스의 개인 능력과 거기에 약간 더해진 운이라고 밖에...

 

포인트 8.

이동국의 터닝, 그리고 슛

이것이 아마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찬스였을 것이다.

실점 이후 우리 수비들의 실수는 없었다.

시간이 촉박해지자, 이제는 수미지역이나 골키퍼나 수비수들에게서 바로 적의 골문

앞의 타게터들에게 롱패스로 요행을 노려보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기가막히게 찔러준 박지성의 낮고 빠른 롱패스를
절묘한 터닝 피봇으로 옵사이드 벽을 무너뜨리고

결정적인 찬스로 변신시킨 것은 이동국의 재능이 덧칠된 장면이라고 볼 만했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이후의 한국 선수들에게서 뿜겨져 나오는 에너지는 다소 완화되었고, 눈빛도 어느정도

패배를 예감한 듯 했다.  공격 전개 속도는 느려지고, 수비도 최소한의 실수를 줄이는

쪽으로 전개되었다.  아마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피로감이 그것을 계기로 상기되었

을 것이리라.

 

평점

박주영 7

박지성 8

이청용 7.5

기성용 6

김재성 5.5

김정우 5

이정수 6

조용형 6

이영표 7

차두리 7

정성용 3.5

이동국 5.5

 

이동국 6

염기훈 5

 

참고로 오늘의 허정무의 전술은 나쁘지가 않았다.

한골을 먹는 걸 각오하고 두골을 얻어낼 각오로 짜낸 전술이었다.

수비를 과감하게 올리고 측면을 양쪽 다 올려서 조여오는 전술과 후반의 변칙

4-4-2 변주는 허정무치고 괜찮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선수교체 타이밍에 대해서는 지적받을 만했다.

빗속에서 평소보다 훨씬 지쳐가는 선수들에게 템포를 약간 쉬어가게 하는 쪽으로

도 유도하거나 혹은 이르거나 느린 타이밍으로 교체를 했어야 했지만,

염기훈 한 명으로 이 모든 것을 덮으려는 것이 오산이었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그리스전 보다 더욱 향상된 경기력이었다.

분명 한국은 전력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었다.

우루과이와 한국은 동급의 상대였으며, 대체로 우루과이에게 운이 작용했었다.

 

이 이상은 누구도 까지 않을것이다.

수고한 그들에게 갈채를 조용히 줄 뿐이다.

by Joshua77 | 2010/06/27 01:55 | 종교 및 잡담 | 트랙백 | 덧글(0)

다 이루었다. (서술식으로 적어보는 피겨 관전평)

누군들 최고의 자리를 꿈꿔보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
그러나 정작 그 최고의 자리의 바로 앞자리에 섰을 때 듣기에는 가장 쉬운 말인
'평상시처럼'이라는 말이 정말 쉽다고 느껴질 사람은 또 몇이나 있었을까.

다 이루었다

이 말은 그 중에 단 한 명에게 선물처럼 주어지는 말일게다.
그 많은 사람의 노력을 생각하면 그 단 한 명이라는 것이 정말 잔인한 말이지만
한 명이기에 그 한 마디는 진정 영광스러운 읊조림으로 화할 수 있는거련다.






이번 동계올림픽 피겨 부분은 어느 정도 관련 지식이 있는 사람 눈에는
재미없는 뻔한 통속적인 스포츠 만화였습니다.
이런 스토리를 만화로 낸다면 정말 평범하다고 보다가 덮어버렸을겁니다.
그런데... 그게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보는 사람이 마치 '이건 짜고 치는게 아니야?'라는 반문이 일 정도로
드라마틱한게 너무 드라마틱을 강조한 전개에 비현실성이 느껴지질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그 비현실성은 수상대가 내려질 때까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결과의 비현실성은 결코 아닙니다.  어짜피 될 사람이 된 거였으니
내가 말하고자 하는 그 비현실성은 과정에 있어서였습다.

자, 선수들이 있습니다.

4번 선수는 평소 사생활에 논란이 많긴해도, 코치가 좀 음흉하긴 해도 본인은 제법 독종
인 듯해서 십년의 점프 습관까지 고치려고 이악물고 재도전해서 1년동안 두번 우승한
선수입니다만, 어째 사람들은 자기보다 연하의 유망주만을 바라보고 박수를 칩니다.
그래서 더더욱 그들에게 자신을 제대로 보여주려고 이를 다시금 악뭅니다.

3번 선수는 이 중에 유일한 서양인입니다.  서양인 답게 선이 굵은 동작을 보이며 시원
시원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7가지 점프중에 5가지 점프를 구사하는 몇 안되는 선수
중에 하나입니다.  나름 북미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최고 인기 스케이터이기도 하다만,
딸의 연기를 보러 오시던엄마가 갑자기 병원에 실려가더니 바로 심장마비 선고를
받고 돌아가십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흐르는 눈물조차도 차갑게 얼려서 그 위를 
냉정하게 미끄러져 나아가야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하늘에 계실 엄마에게
메달을 약속드리며 차분히 나가는 서양 최고의 스케이터가 바로 그녀입니다.

2번 선수는 1억 5천만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나가는 어린선수입니다. 
비록 그녀의 잘못된 습관이라고는 하나 그 기술(공중 3회전 반)을 시도라도 해 볼 선
수는 그녀밖에 없습니다. 이제와서 본인의 습관을 고치기에는 너무도 늦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만의 장점을 오히려 극대화하려고 했는데, 그게 맘대로 되지 않아
서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온 지도 어느덧 2년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본인 특유의 유연함과 톡톡튀는 반짝이는 스케이팅이 있고, 날렵함을 앞세운
경쾌한 스텝을 구사하며, 여자선수들 중에서 단일 점프로는 사실상 최고난이도를
자랑하는 그 기술(공중 3회전 반)을 할 줄 압니다.
그러나... 그녀는 단지 20세의 어린 소녀일 뿐입니다...

1번 선수 역시 5천만의 기대를 한 몸에 받기는 하다만,
그녀는 피겨하는 것을 마치 달에 로켓을 보내는 것만큼이나 아득하게 여기는 나라에서
태어나서 아무도 제대로 가르쳐 주는 여건도, 연습장도 없는 곳에서 태어나서
기약이 없는 길을 걸어가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어릴 때 처음 만난 천재라는 2번 선수와 겨루어 보고 그녀의 천재성을 몸소 겪으며
분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어쩌다 내 나이대에 저런 선수가 나오게 되었냐'
절대 지기 싫어하는 독종소리 들으면서 연습과 연습을 반복하는데, 정작 그녀는
그녀가 천재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생각한 그녀는 천재(2번선수)를 이기
기 위해 또 자신을 담금질합니다.  누군가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녀에게 물어봅니다.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습니까?'
'없었어요'
이 말이 무엇을 의미했을지!! 그 정답은 오늘의 금메달이 대신 답해주겠죠.
남들이 트리플악셀을 하건, 피겨에 영향력이 많은 나라이건, 편법적인 점프를
하건, 판정이 애매하건, 그녀는 오로지 뚝심있게 그녀만의 길을 갔습니다.
그 길은 정확한 점프와 속도감과 부드럽고 우아함을 추구하는 길
과거 피겨 역대 최고라는 전설의 카타리나 비트라는 선수와도 비슷한 길을 걷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덧 5개 대회 연속 우승에 올림픽만을 제외하고 모든 대회
를 석권하고, 이제는 그녀가 금메달을 따지 않는 것을 되려 의문시하는 상황까지
되어버렸습니다. 
과유불급이라, 지나쳐서 좋을 건 없는데 우리는 지나쳤죠.
그녀가 본인의 나라에서 본실력을 다 발휘못하고 2위에 머무르고 가면서 말했죠.
'다시는 한국에서 여는 대회에 출전하고 싶지않다.'
과연 그녀는 사람들이 말하는 강심장이었을까요?

운명이란게 잔인하다고 하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확인하는 때가 바로 이런 때겠죠.

2번 선수가 나섭니다.
최근처럼 하면 60점 정도 나올겁니다.  1번 선수는 최근처럼 하면 70점 정도 나올
것이고요.  그런데... 2번 선수는 이를 악물고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한계를 넘어보
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쇼트연기를 마치고 본 전광판에 들어온 빛이야 말로
그녀의 앞날을 나타내는 것처럼 환한 빛이었습니다.  73점??
그녀조차도 믿을 수 없는 점수라니.

사람들이 감심장이라고 하지만, 그녀를 아는 사람들이 그녀를 털털하다고까지
하는 그녀라고하지만, 생각해보죠.  그런 섬세한 연기가 그런 둔한 마음으로 과연
나올 수가 있을 것인지...  그러나 1번선수 그녀는 그런 마음을 모두 뒤로하고
카메라 앞에서 어쭈? 하는 듯한 미소를 싱긋 짓고, 혀를 낼름하며 빙판에 나갑니다.
만약에 그 연기가 실패하면 그건 모두 허세라는 것이 들통났겠죠.
2번 선수는 1번 선수의 최고 기록에 근접한 점수를 받고 지금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번 선수를 위한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무대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스르르 정지합니다.
모두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기뻐하는 그녀와 전광판에 뜬 78점이라는 점수를 봅니다.
보통사람들이 던질 법한 질문입니다.
'과연 그녀에게 심장이란 존재했을까요?'

3번 선수는 차라리 편한 마음이었을 수 있습니다.
1,2번 선수들의 기적같은 연기들을 한 걸음 떨어져 볼 수 있었던 것이
그녀에게는 오로지 빙판과 하늘이 보였을 따름이었으니까요.
지금만큼은 마지막 모습이라 예상도 못했던 그 헤어질 때의 인사만이 머리속을 떠나
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점수 발표가 끝나고 그녀는 하늘을 보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4번 선수 역시 몰래 감추어 둔 투지를 꺼내어 보지만,
10년 점프를 교정하고, 부상을 겨우 이겨낸 근성으로도 1,2번 선수들을 따라잡을 수
없음을 확인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녀의 노력에 도대체 시간은 무엇을 보답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세계에서 5손가락 안에 드는 위대한 선수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그녀를 만족시킬 순 없었습니다.
2번 선수는 오늘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4번 선수는 스스로의 한계에 근접했습니다.

2일이 지나는 동안에 언론들은 추측에 추측을 기정 사실화하여서
많은 보도를 쏟아냅니다.
추겨주거나 격려를 하거나 그 모든 것들이 다 부담으로 보이는 것은
그 어떤 선수들에게도 마찬가지 일 겁니다만...
어쩌면 그렇게도 운명은 잔인한지...

쇼트 프로그램에서 일어났던 일이 정반대로 1,2번 선수들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이번에는 1번 선수가 연기를 먼저하고 2번 선수가 뒤이어서 연기를 하게 된거리니요.
짜고 치는 고스톱도 이 쯤되면 너무 눈에 뻔하니 재미없어 할 만도 하건만,
그 공평함에는 정말 할 말이 없어집니다.

4번선수의 무대는 차분했습니다.  그 수준은 작년에 2개 대회를 우승할 때와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냥 올림픽만 아니었다면 내심 우승도 기대해 볼만한 괜찮은
연기였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고 내려오는 그녀의 모습 뒤에는
만족이 자리잡고 있었을 지, 아니면 반은 분함이 자리잡고 있었을 지는 그녀만
알고 있겠죠.  확실한 건 이대로는 1,2번 선수들에게서 최고의 자리가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1번 선수가 나옵니다.  2번선수의 투지... 아직은 안심할 수 없는 5점차...
5천만의 과도한 기대... 경기장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부모님... 따뜻한 코치님의 미소...
나의 한계는? ... 하나 둘씩 스르르 마음에서 비워집니다.
다 비웠다고 생각되는 순간에 거쉰의 음악은 시작되고 그녀는 눈을 반짝 뜹니다. 그리고...
공간이 사라락 얼어붙어 갑니다.
모두들 정신을 차리자 박수부터 칩니다.
방금 과연 빙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요?
우리가 올림픽에서 이런 연기를 본 적이 있었던가요?
그리고 그녀를 봅니다.
그녀는... 맙소사, 그녀는 울고 있었습니다.
그녀도... 인간이었습니다.  그것도 섬세한.
우린 모두 그 사실을 잊고 있었던거죠.
연습, 금식, 꾸중, 포기, 부상, 인내, 광고, 악플, 기대, 경쟁자들, 관심, 냉정, 열정, 행복,
영광, 나락, 극기,....
수 많은 개념들은 이젠 흐물흐물 섞여서 휘리릭 안구를 휘젓기 시작합니다.
그녀가 웁니다.
그녀를 보던 사람들은 티비 앞에서 울기 시작합니다.
'제발 울지 좀 마, 보는 사람 눈물나게...'
말과 행동이 다른 때는 많은 법이지요.

이 모든 환희와 감동은 한 데 뭉쳐져서 2번 선수에게 거대한 해머로 가슴을 퍽하고
치고 지나가는 듯합니다.
가녀린 모양새를 취하고는 있지만, 그녀에게 1번 선수는 마치 마왕과도 같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그걸 비웃는 듯이 그걸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아득히
능가해버리는 그녀...  그렇다고 내가 절대 못하는 게 아닙니다.
그건 누구나 다 인정합니다.  1번선수 그녀만 빼면 자신은 피겨 역대 여왕의 계보를
자신이 이었을 것이라고... 그러나 이런 가정은 꿈처럼 너무 달콤하기만 합니다.
이래서는... 자신의 눈물나는 노력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지 않습니까...
자신은 한계를 넘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1번선수는 그 한계를 비웃듯이 너무도 쉽게
넘고 그걸 더 앞서나가더니, 이번에는 1번선수 자신이 먼저 그 한계를 3,4단계는 넘
은 것같은 연기로 되받아쳐 주고, 이젠 자신이 거기에 대응은 해야겠는데, 이건
자신의 한계가 어쩌고 수준이 아닙니다.
피겨의 역사가 1번선수 그녀에게 엎드려 절해야 할 수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2번선수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과연 무엇일까요?
차라리 모든 연기를 마치고 나간 4번 선수가 홀가분 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2번 선수는 이를 악뭅니다.
아름다워야 할 피겨연기는 언제 이렇게 비장한 연기가 되었습니까?
보는 사람들은 이 잔인한 운명에 발악을 하는 그녀에게 동정의 눈물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 종은 운명을 선고하는 종소리였는지요.
연기는 끝났지만, 생각보다는 후한 점수가 주어졌지만, 공식대회 처음으로 개인 200점
돌파를 했다지만, 처음으로 트리플악셀을 일단 뛰어서 넘어지지는 않았다지만,
그런 모든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2번 선수는 아직도 경기를 계속하는 듯 멍해 보였습니다.
운명이 공평한건 사실이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인하다고 해야겠습니다.
2번 선수 역시 모든 것을 마치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도 사람이었습니다.

3번 선수의 연기는 1,2번 선수들처럼 자신의 삶과 국가를 걸고 하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그녀의 연기는 가족이라는 우리들을 가장 따뜻하게 해 주는 인간관계에 집중한 듯했
습니다.  고국에서 열리는 올림픽? 고국사람들의 부담스러운 응원? 
모든 것에서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러고 마음으로 말합니다.
'엄마, 보세요.  엄마가 낳아준 제가 이런 연기를 할 정도로 자랐어요.'
3번 선수 역시 모든 것을 마치고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도 사람이었습니다.

20 여 분 남짓한 시간의 피겨 역사의 한 대목을 완성한 장면은 이렇게 끝나고.
그 중 한 명에게 이런 말을 내뱉을 자격을 부여했습니다.
'다 이루었다'
피겨가 아닌 인생의 그 어떤 것에도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주어지는 때는
흔치 않습니다.  그만큼 그건 누군가에게 영광이 되는 말이죠.

우리는 오늘 그런 영광을 목도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만...
잔인한 운명과 그 주역들의 그림자에 도사린 아픔들, 격정들을 생각하면
그녀들이 한낱 20세 밖에 되지 않는 아이들이라는 점이 새삼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오늘만은 Long live the Queen!!을 외치며 또한 Queen이 되지 못한 Princess들을
기억할 수 있는 날이기를 바랍니다.




by Joshua77 | 2010/02/26 21:18 | 종교 및 잡담 | 트랙백(1) | 핑백(1) | 덧글(20)

(근조) 그 길이 흡수해야할 피가 아직도 충분하지 못했던 겁니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무엇을 위해 죽는다'라는 말이 가장 힘들게 이루어지는
형태는 무얼까 하고 말이죠.

이를테면 '연인을 위해 죽는다'라는 약속을 지키기에 가장
힘든 방법의 성취는 바로 '결혼해서 평생을 그 연인을 위해
서 자신의 행복과 기쁨보다는 그녀를 위해서 인생 전체를
소모시켜서 늙어죽어가는 것'의 형태가 아닐까 하는데 여러
분도 거기에 동의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그녀를 위해 한 번 몸던져서 생명을 바치는 것보다 훨씬 어렵
고 고통스러운 약속이행의 과정이 그런 것이 아닐까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이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민주화 운동은 누구 한사람의 십자가가 절대로 아닙니다.
수 많은 사람의 불편함과 두려움을 넘어선 행동과 재산적인
손해와 시간적인 낭비와 인간관계의 희생, 물리적인 고통,
나아가서 흘린 피의 소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만큼은 이땅의 민주화를 떠올리며 누구
한 분을 위해서 잔을 들어야 하는  날이 되기를 기원하게 되는군요.

죽을 고비가 몇 번 지나갔는지도 모르고, 이미 처형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적도 거쳐갔지만, 그도 이번만큼은 죽음을 비껴나가지는
못했군요.

30초반의 아직 앳된 나이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서 5.16쿠데타
점령군앞에서 어짜피 취소당할 당선신고를 알면서도 올리러 갔던
그 젊은이.  그 젊은이가 훗날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우리나라의
민주화의 두 상징이 되어버리게 될 지를 그를 막아선 계엄군 위병은
꿈에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아가 대한민국 역사상 첫 정권교체 대통령이 되었으며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을 만들고 더 나아가서 노벨평화상까지 받게될 줄을 말입니다.

제 눈으로 본 김대중 전 대통령은 뭐, 이상적인 분은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먼저 서거하신 노통이 제겐 더욱 이상적인 모습에 가까웠었죠.
정책의 약점들, 민주화운동 전개당시의 문제점들, 혹은 도덕적으로
바르지 못했던 약점들...  그러나 그런 문제점들을 말하기에는 이미 이
분의 상징적인 의미들이 거대하게 압도해 버린 후가 어느덧 되어버렸죠.

한국 현대사의 거인은 졌습니다.

그를 싫어했건, 존경했건, 돌팔매를 던졌건, 슨상님하면서 떠받들었건...
오늘만은 그를 추모합시다.
누가 뭐라고 하건 그의 인생은, 제가 앞서 말한 그 '평생을 소모시켜서' 대한
민국의 민주화를 위한다는 약속을 고통스럽게 지켜나갔던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의 영혼이 오늘 밤에 주님의 품에서(천주교 신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생전에 누리지 못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by Joshua77 | 2009/08/18 15:53 | 종교 및 잡담 | 트랙백 | 덧글(7)

문학소녀 시리즈

일단은 우리나라에 발매된 '문학소녀'시리즈의 내용을 제법 담고 있습니다.
읽어 보지 않으신 분들께는 주의를 요합니다.
책중간의 그림같은 것을 스캔해서 올리고 싶어도 요즘 저작권 서슬이 
시퍼렇네요. ^^;;  그래서 보시기에는 다소 지리한 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남자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여성을 둘만 꼽으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답은 비슷할 것입니다.
어머니와 아내겠죠.
그렇다면 이 두 여성의 경계에 있을 법한 여성은 어떤 여성이 있을까요?
어머니처럼 내게 한 없이 베풀어 주고, 따뜻한 공간을 만들어서 나를 허락하는,
그러면서 나보다 훨씬 내면이 강하고 성숙하며, 그렇지만 연애의 범주는 아니고,
언제나 힘들때 품에서서 쉴 수 있게 해주는 여성이라..
아내처럼 어느 정도는 나와 대등하며, 연애 대상으로 바라볼 거리에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약간은 주고 받는 것이 가능한 거리의 여성이라..

이런 정도의 묘사가 가능한 여성은 보통은 '누나'라고 하거나 혹은 약간 특수한
범위로 좁혀서 '첫사랑의 연상의 여인'정도로 분류할 수 있겠군요.

개인적으로 저는 장남이지만, 제가 어릴 때에는 제 옆집의 누나들이 있어서, 어린
시절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유치원도 가기 전의 어린 저는옆집의 4자매가
사는 집에 놀러가면 제 또래의 애들과같이, 4살 위, 7살 위의 누나들과 소꿉놀이,
숨바꼭질, 곤충잡기등등을 하면서 놀 수 있었고, 그 누나들은 친절하셔서 제가 달리
다가 다치거나 하면 금방 가서 약을 내어와서 치료해 주시기도 할 정도였으니,
제가 그냥 이웃 동생치고는 많은 보살핌을 받았었죠. 
우리 어머니도 이 분들과 함께 놀면 안심하곤 하셨습니다.
(지금 시점에서는 물론 오래전에 다들 시집가셨고, 전에 군인 시절에 휴가나왔을 때
그 누님들 중 한 분 결혼식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그 누님은 절 보고 정말 행복해
하시더군요.  제 감상은 '신부가 아깝다 --+' 였지만 말입니다.)

서론이 길었군요.


이어지는 내용

by Joshua77 | 2009/07/25 15:43 | 소설 | 트랙백 | 덧글(1)

롯.데.교. - 다음 야게 펌

다음 야구토론방의 차승훈님의 게시글을 퍼 왔습니다.
내용은 25년이상 성장한 한 종교에 대한 글입니다.



요즘 무섭게 신도수를 늘리고 있는 종교, 롯데교에 처음 입교하는 새 신도를 위한 안내서.

Q : 롯데교의 주된 교리는 무엇인지요?

A : 무엇보다 부활과 재림의 신앙입니다.

언젠가 롯데가 코리안시리즈에서 우승하는 재림의 그 날이 올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지 않으면 롯데교 신도라 할 수 없습니다.

Q: 예배당은 어디입니까?

A : 본당은 부산 사직 예배당입니다. 신도 3만5천 명 가량이 동시에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사직은 롯데교의 발상지로 신도들의 성지입니다.

가끔 마산 부예배당이나 롯데교의 11시 멀티인 서울 잠실 예배당등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최근 롯데교의 부흥으로 신도들이 전국 각지에 퍼져 있습니다.

예배당에 직접 오시기 힘드신 분들은 각 가정에서 '소파 예배'를 보셔도 됩니다.

Q ; 모태신앙이란 무엇입니까?

A : 어렸을 때 부모 손 잡고 예배당에 왔다가, 골수 롯데 교인이 된 사람들을 말합니다. '아주라' 기도가 만들어낸 롯데교의 특징입니다.

Q : 기독교는 일주일에 한 번만 예배를 보면 되는데, 롯데교는 일주일에 6번이라니, 너무 자주하는 건 아닌지요.

A : 대신 겨울에는 예배를 쉽니다. 최근 롯데교는 가을 예배도 8년만에 겨우 했습니다.

Q : 성직자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A : 예배시간에는 모두 10명의 성직자가 예배를 집도합니다.
성직자 가운데 영성을 받은 분들은 (聖人)의 반열에 오르기도 합니다.

Q : 찬송가가 있습니까?

A : 성인(聖人)이 등장할 때 마다 찬송가를 부릅니다.

특히 가르샤 성인이 등장할 때 부르는 '할렐루야'송은 장엄하여 신앙심을 높입니다.

예배를 마칠 때가 되면, 롯데교 최고의 찬송가 '부산 갈매기'를 부릅니다.

Q : 민한님도 성인입니까?

A : 그 분은 이미 성인의 반열을 뛰어넘어 신이 되셨습니다. 롯데교에서는 민한신이라고 부릅니다.

Q : 불교적인 요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A : 주찬님을 부를 때는 '주처'라고 합니다. 롯데교는 동서양 신앙을 포용하고 있습니다.

Q ; 롯데교에는 독특한 의식이 있다고 합니다.

A : 예배중에 주황색 비닐 보자기를 머리에 씁니다. 마치 카톨릭에서 흰 수건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롯데 신도들에게는 소중한 의식입니다.

Q : 롯데교에 광신도가 많다는 데요.

A : 가끔 롯데교 예배에 몰입하느라 가정을 돌보지 않아 이혼 위기를 겪고 계신분, 직장에서 인터넷 예배 보시느라 해고 위기에 놓인 분들이 계십니다. 롯데교는 신도들의 정상적인 생활을 바랍니다.

온 가족 모두를 예배당에 불러서 롯데교 신도로 개종시키면 가정 문제가 해결됩니다.

직장 문제를 위해서는 휴가를 쓰시기 바랍니다.

Q : 롯데교가 다른 종교보다 나은 것은 무엇입니까?

A : 요즘 일부 종교 단체가 정치에 개입하면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만, 우리 롯데교는 철저한 정교분리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게시판에서라도 정치 이야기를 하면 환영받지 못합니다.

또한 신도들의 돈을 뜯는 일부 사이비 종교와 달리, 우리 롯데교는 신도들에게 금전적인 강요를 하지 않습니다. 단지 예배당 입장료만 받을 뿐입니다.

Q : 이단도 있습니까?

A : 항간에 롯기동맹이라 하여 롯데 이외에도 구원이 있다 외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는 정통 교리에 위배되는 것으로 이단입니다. 다만 롯데와 친분이 깊은 '히어로즈교'에 대해서는 아직 그 교세가 크지 않아 용인하고 있습니다.

Q : 롯데교와 반대되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A : 기독교의 적그리스도와 같이 세상을 어둡게 하는 악마의 무리가 있으니 바로 사탄의 왕(Satan King) 입니다. 영어 약자를 줄여 부르기도 합니다.

이 무리들은 롯데 '그날'의 재림을 막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리파가 금하고 있는 벌떼 예배, 빈볼 예배 등을 하고 있어 우리 신도들이 가까이 해서는 안 됩니다.

Q : 항간에는 롯데가 전쟁 준비를 한다는데요 사실인가요?

A :롯데에는 북한의 대포동이나 남한침량용 대공포보다 위력이 좋은 홍포라는 무기가 있습니다
김정일씨가 함부로 공격을 못하는 이유가 바로 홍포의 위력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로써 타 교리들의 투수집도자들이 롯데의 홍포를 만나면 오줌부터 지린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Q : 마지막으로 롯데 기도문을 알려주십시오.

A : 롯기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

부산에 계신 우리 갈매기여,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 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1984,1992년에 이룬 것 같이 올해에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홈런볼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에러한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음주 응원을 사하여 주옵시고, 똥줄야구의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연패에서 구하옵소서. 포스트시즌의 영광이 자이언츠에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주라~~!



거참, 저도 부산사람 아니랄까봐 롯데야구에 일희일비하는건 어쩔 수 없네요.
이게 부산의 유전자인지 모르겠습니다. ㅎㅎ

by Joshua77 | 2009/07/06 20:34 | 종교 및 잡담 | 트랙백 | 덧글(5)

이제 자리를 딛고 일어나면서 써갈긴 글


분향소를 일어나며


손바닥을 털털 털고 일어났더라.
좌우를 보고, 앞뒤를 보고, 상하를 보았더라.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인 나를 보아라.

여기까지 슬퍼하기로 하자.
다시 말하지만, 여기까지만 슬퍼하기로 하자.
어금니 깨물며 참고 말하되, 딱 여기까지만 슬퍼하기로 하자.

지금 네가 지고 있는 짐은 과연 누가 지워준 것이었다면,
지금 네가 이고 있는 빚은 과연 누구를 향한 채무였다면,
그 눈물을 그냥 땅에 떨어진 것이 되어선 안될 것이렸다. 

네 눈앞에서 노란 봉황은 부엉이바위 위에 추락하였다.
날개를 접이고, 부러뜨리고, 뜯어내고, 낭떠러지로 밀어냈더니...

묻건데, 너는 오히려 비로소 비상했다고 믿는가?

누군가 내가 흘릴 피를 대신 흘려서 구원받는 것이 가능하다면,
또 누군가 내가 치룰 대가를 대신 치뤄서 쟁취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러니 형제자매들아,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지는 못한다고 해도
피묻은 손에 쥐여진 담배는 한모금씩 빨아보자꾸나.

담배연기는 머리를 풀고 한 없이 자유롭게 날아갔으렸다.
담배연기는 좌도 우도 남도 북도 없이 스스럼 없이 퍼져나갔으렸다.
담배연기는 스스로를 뜨겁게 태워 고통스러운 사람들에게 잠시라도 위안을 줬으렸다.

그거면 된다.
거창한 혁명이니, 불굴의 열사니
오히려 스러진 이에게는 너무도 부담스러웠으렸지 않겠는가.

그래도 한 마디 더 해 보고 싶다면...

그제야 당신이 그리웠다고 목놓아 울어도 될 일일게다.




(누군가 제게 시인이라고 부르셔서, 그제야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런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아예 오늘의 기분을 이렇게 시적인 형식을 빌려서 끄적여 봅니다.
슬피 울고나서, 그러면 나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라는 고민은 생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무언가 느끼느 바 는 있을 것이고 다짐하는 바 도 있겠지요.
저 역시 이제는 이 나라에서 일아나는 일들을 다소 전투적인(?) 시각으로 임해야 하겠다는
마음이 앞서지만, 그 역시 한 때의 기분에서 끝날 수 있겠죠.  저는 생각보다 망각의 동물이
니까요. 
그러나, 그 망각을 넘어서 제게 건설적인 변화를 꾀할 수 있다면? 
아마, 저 세상에서 고인을 혹 만나 볼 수 있다면, 그 때 우리는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미안한 마음과 반가운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하나로 아우려서 고인과 덕담할 꺼리는 하나
만들어 놓는게 되겠죠.  저는 그런 변화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칩니다.) 

by Joshua77 | 2009/05/30 02:15 | 종교 및 잡담 | 트랙백 | 덧글(2)

노통 분향소를 다녀왔습니다.

부산에는 부산역과 벡스코에 분양소가 차려져 있더군요.
오후 6시 쯤 해서 조문을 드렸답니다.

08년에 저는 부산 촛불집회를 서면에서 했고...
09년에 저는 노통 조문을 부산역광장에서 하네요...
날씨는 무척 흐리고, 분향소의 장막들은 다들 무채색에,
오신 분들 옷들 색도 대부분 검은색이나 흰색 계열의 옷들...
그런데 노통의 영정만 천연색이더군요.
마치 흑백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다양한 색깔을 추구했던 분의 삶처럼 말입니다.

제가 그냥 그렇게 선입견을 가지고 봐서 그런지,
나이 드신 분들보다 젊거나, 혹은 젊다기 보다 '어리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교복입은 여고생, 딱 봐도 대학생 티가나는 남자들, 군인들, 5,6살 되어 보이는
애들을 거느린 주부들...
비록, 얼핏봐도 한국 사회에서 힘이 없어 보이는 부류의 사람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또한 한국의 미래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갈때는 아직 퇴근시간보다는 좀 이른시간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대충 눈셈으로 150명 정도가 분향소 앞에 줄을 서 있고
그 주위에 200명 정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좀
느는 추세였습니다.  퇴근한 시민들이 몰려서 그러리했습니다.

국화를 받아서 기다리면서
저는 노통의 영정을 정면에 보는 위치에 서 있었는데,
어쩐지 구김살 없어 보이는 노통의 얼굴 모습을 그대로 받고 서 있기는 무언가가
부끄럽더군요.
'너는 이 사람이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곳에서 억울하게 죽어갈 때 너는 뭐하고
있었나?'라고 누군가 묻는 것 같고
저는 '...' 유구무언으로 시선을 피하는 마음이 들고
그러나 노통은 '괜찮다. 뭐 나같은 늙은이 하나 죽는게 뭐 대수라고'라면서
아무렇지 않는 듯 웃는 것같은 기분이 들어서 더더욱 시선각도는 노통의
정면을 비껴나게 되더군요.

제 차례가 오자, 단앞에 나아 갔습니다.
저는 약간의 기행(?)을 했습니다.
노통 분향단 앞에는 담배들이 놓여 있더군요.
하지만 저는 담배는 싫어합니다.
안그래도 일찍 가신 분이 생명을 단축시키는 담배라니...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커피를 놨습니다.
제 아버지가 저렇게 담배 많이 피우신다면 저는 옆에서
막 구박하면서 대신에 사탕이나 커피를 마시우게 했을테니 말이죠.
저는 일단은(!) 기독교인이라 큰절은 하진 않지만 손을 모아 고개를 숙이고
망자의 영혼에 평안을, 그리고 거기에 더해질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나오면서 많은 사람이 '노란색'의 리본을 분향장막에 매는 것을 보고 저도 몇 자 적어서
매었습니다.  수백, 천 수백으로 보이는 노란색의 깃털들이 고이고 엮여서 봉황의 날개로, 그리고 그
날개를 단 봉황은 부엉이바위에 고인 피를 가르고 올라올라가 언젠가는 대한민국의 창천에 웅비하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었습니다.

윤동주시인의 서시가 떠오르기도 하고 한용운시인의 님의 침묵이 생각나기도 하는
그 광장에서 날은 흐리고, 슬픔이 감도는 저녁때에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 보는 저와 관계없는
사람에게 드리는 조문은 이렇게 지나갔습니다.

되새기건데, 정말 우리는 잃고나서야 정말 소중했던 것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군요.

by Joshua77 | 2009/05/26 22:48 | 종교 및 잡담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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