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통 분향소를 다녀왔습니다.

부산에는 부산역과 벡스코에 분양소가 차려져 있더군요.
오후 6시 쯤 해서 조문을 드렸답니다.

08년에 저는 부산 촛불집회를 서면에서 했고...
09년에 저는 노통 조문을 부산역광장에서 하네요...
날씨는 무척 흐리고, 분향소의 장막들은 다들 무채색에,
오신 분들 옷들 색도 대부분 검은색이나 흰색 계열의 옷들...
그런데 노통의 영정만 천연색이더군요.
마치 흑백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다양한 색깔을 추구했던 분의 삶처럼 말입니다.

제가 그냥 그렇게 선입견을 가지고 봐서 그런지,
나이 드신 분들보다 젊거나, 혹은 젊다기 보다 '어리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교복입은 여고생, 딱 봐도 대학생 티가나는 남자들, 군인들, 5,6살 되어 보이는
애들을 거느린 주부들...
비록, 얼핏봐도 한국 사회에서 힘이 없어 보이는 부류의 사람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또한 한국의 미래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갈때는 아직 퇴근시간보다는 좀 이른시간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대충 눈셈으로 150명 정도가 분향소 앞에 줄을 서 있고
그 주위에 200명 정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좀
느는 추세였습니다.  퇴근한 시민들이 몰려서 그러리했습니다.

국화를 받아서 기다리면서
저는 노통의 영정을 정면에 보는 위치에 서 있었는데,
어쩐지 구김살 없어 보이는 노통의 얼굴 모습을 그대로 받고 서 있기는 무언가가
부끄럽더군요.
'너는 이 사람이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곳에서 억울하게 죽어갈 때 너는 뭐하고
있었나?'라고 누군가 묻는 것 같고
저는 '...' 유구무언으로 시선을 피하는 마음이 들고
그러나 노통은 '괜찮다. 뭐 나같은 늙은이 하나 죽는게 뭐 대수라고'라면서
아무렇지 않는 듯 웃는 것같은 기분이 들어서 더더욱 시선각도는 노통의
정면을 비껴나게 되더군요.

제 차례가 오자, 단앞에 나아 갔습니다.
저는 약간의 기행(?)을 했습니다.
노통 분향단 앞에는 담배들이 놓여 있더군요.
하지만 저는 담배는 싫어합니다.
안그래도 일찍 가신 분이 생명을 단축시키는 담배라니...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커피를 놨습니다.
제 아버지가 저렇게 담배 많이 피우신다면 저는 옆에서
막 구박하면서 대신에 사탕이나 커피를 마시우게 했을테니 말이죠.
저는 일단은(!) 기독교인이라 큰절은 하진 않지만 손을 모아 고개를 숙이고
망자의 영혼에 평안을, 그리고 거기에 더해질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나오면서 많은 사람이 '노란색'의 리본을 분향장막에 매는 것을 보고 저도 몇 자 적어서
매었습니다.  수백, 천 수백으로 보이는 노란색의 깃털들이 고이고 엮여서 봉황의 날개로, 그리고 그
날개를 단 봉황은 부엉이바위에 고인 피를 가르고 올라올라가 언젠가는 대한민국의 창천에 웅비하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었습니다.

윤동주시인의 서시가 떠오르기도 하고 한용운시인의 님의 침묵이 생각나기도 하는
그 광장에서 날은 흐리고, 슬픔이 감도는 저녁때에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 보는 저와 관계없는
사람에게 드리는 조문은 이렇게 지나갔습니다.

되새기건데, 정말 우리는 잃고나서야 정말 소중했던 것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군요.

by Joshua77 | 2009/05/26 22:48 | 종교 및 잡담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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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알트아이젠 at 2009/05/26 22:51
역시 시인다운 기행(?)을 보여주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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