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녀 시리즈

일단은 우리나라에 발매된 '문학소녀'시리즈의 내용을 제법 담고 있습니다.
읽어 보지 않으신 분들께는 주의를 요합니다.
책중간의 그림같은 것을 스캔해서 올리고 싶어도 요즘 저작권 서슬이 
시퍼렇네요. ^^;;  그래서 보시기에는 다소 지리한 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남자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여성을 둘만 꼽으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답은 비슷할 것입니다.
어머니와 아내겠죠.
그렇다면 이 두 여성의 경계에 있을 법한 여성은 어떤 여성이 있을까요?
어머니처럼 내게 한 없이 베풀어 주고, 따뜻한 공간을 만들어서 나를 허락하는,
그러면서 나보다 훨씬 내면이 강하고 성숙하며, 그렇지만 연애의 범주는 아니고,
언제나 힘들때 품에서서 쉴 수 있게 해주는 여성이라..
아내처럼 어느 정도는 나와 대등하며, 연애 대상으로 바라볼 거리에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약간은 주고 받는 것이 가능한 거리의 여성이라..

이런 정도의 묘사가 가능한 여성은 보통은 '누나'라고 하거나 혹은 약간 특수한
범위로 좁혀서 '첫사랑의 연상의 여인'정도로 분류할 수 있겠군요.

개인적으로 저는 장남이지만, 제가 어릴 때에는 제 옆집의 누나들이 있어서, 어린
시절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유치원도 가기 전의 어린 저는옆집의 4자매가
사는 집에 놀러가면 제 또래의 애들과같이, 4살 위, 7살 위의 누나들과 소꿉놀이,
숨바꼭질, 곤충잡기등등을 하면서 놀 수 있었고, 그 누나들은 친절하셔서 제가 달리
다가 다치거나 하면 금방 가서 약을 내어와서 치료해 주시기도 할 정도였으니,
제가 그냥 이웃 동생치고는 많은 보살핌을 받았었죠. 
우리 어머니도 이 분들과 함께 놀면 안심하곤 하셨습니다.
(지금 시점에서는 물론 오래전에 다들 시집가셨고, 전에 군인 시절에 휴가나왔을 때
그 누님들 중 한 분 결혼식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그 누님은 절 보고 정말 행복해
하시더군요.  제 감상은 '신부가 아깝다 --+' 였지만 말입니다.)

서론이 길었군요.




제가 말하고자 하는 이 이야기는 아사쿠라 코노하의 시점으로 묘사된 '문학소녀'
시리즈 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개성을 결정하는 것은 인용된 여러 문학 작
품들의 내용과 더불어 아마노 토오코라는 문학소녀의 존재라고 단언할 수 있겠
네요.  제가 위에서 적은 그 '누나' 혹은 '첫사랑의 연상의 여인'이라고 졸렬하게
묘사한 그 속성을 지닌 바로 그 문학소녀 입니다.

라이트 노벨에서 흔히들 정형화 된 구도는 그 정형성 때문에 저는 그닥 좋아하지
않습니다. 
작가 본인들이 원해서라기보다는 그 주요 소비계층들이 '소비하길 좋아하는' 식
으로 설정하다보면 그 작가 고유의 개성은 어느정도 퇴색되기 십상이니 말이죠.
'이상'을 내세우는 먼치킨 아니면 능력없는 주인공, '현실'을 내세우는 주인공의
상대들, 그 실력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장황한 설정놀음, 그리고 그 옆에 있는 통
칭 '츤데레'히로인, 소꿉친구 히로인, 여동생격 히로인, 글래머 연상의 여인, ...
,마지막에 드러나는 (딴에는)의외의 반전, ...  이런 따위의 이야기들 속에서
저는 약간 냉소적인 시각까지 가지게 되곤 했습니다.
문학소녀에서도 그런 정형성은 어느정도 있었습니다.  말안해도 보신 분들이시면
어떤 부분인지 쉽게 아실 법도 하군요.
그래서 '어디서 본 듯한 인물설정'이나 '어디서 본 듯한 전개방식'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선뜻 남들에게 추천할 만한 꺼리가 있을까요?
저는 그것을 위해서 이런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허나, 짚고 넘어가야 할 구멍이 꽤 컸던 것은 사실입니다.
처음부터 줄곧 추리소설을 연상하게 하는 이야기의 미궁과 거기서 습득하는 단
서들을 조합하는 데 있어서 코노하의 역할은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되려 이야
기 속의 트릭속에 휘말리기만 하다가 마지막에 쨘 하고 나타난 '탐정모드'의
문학소녀에 의해서 일거에 그 깊고 깊은 은원과 애증의 갈등들이 해결된다는
'데우스 마키나'적인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그래도 마지막 권에서는 코노하녀석이 좀 믿음직하게 스스로 해결하긴 하는데,
그 과정에서 코노하가 판단을 할 만한 근거들이 좀 희박합니다.  본문에서도
코노하는 카나코와 언쟁을 하기 직전에 스스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 인
정하는 언급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코노하는 갑자기 레스트레이트 경감이 갑자기
쨘 하고 홈즈가 되어버린 듯, 술술 모든 것을 정리해 버립니다.
솔직히... 이런 부분에서는 세심함을 요구하는 건 너무한 요구였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에서 찾아낸 만족스러움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먼저는 작가가 아직 완숙한 경지에 오르지 못했음에도, 작가라는 존재 스스로에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대한 글을 쓴다는 용기가 가상(?)했달까요.
병든 스스로의 몸을 집도하는 의사처럼, 자신의 운명을 점치는 점술가처럼, 그건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겁니다.  고전을 섭렵한 작가 스스로도 본인은 코노
하처럼 아직 세상을 모르고 아직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은 작가로 보이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위대한 선배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의 모티브인 그 길을 걸어
가며, 스스로 걷는 그 좁은 문 안의 길이란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답을 내어 보려
는 시도가 가상하게 보였달까요.

또한 라이트 노벨들이 흔히 주인공을 둘러 싼 세계를 바꾸어 나가는 데 주력하여
마치 무협지 같은 묘사에 치중하는데 반해서 이 이야기는 사람의 심리에 주목하고,
그 변하기 어렵다는 사람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타당성있게 바뀌어 나가는지, 그
리고 그것이 어떤 의미있는 변화였는지를 둘러보는, 어떻게 보면 장르 문학들 보
다는 순수 문학들에 가까운 지향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첫사랑인 얀데레 소녀의 자해테러(...)를 겪고 반쯤 폐인이 된 작가지망 소년이
문학작품들과 비슷한 상황들을 겪으면서 책을 먹는 요괴 선배(...)에게 어떻게 따
뜻하게 보듬여 나가는지가 입체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저는 나름 이 마니악한
책을 다른 사람들에게 선뜻 권할 수 있게 되었죠.
(적고 보니 무슨 공상동화같네요. ^^;;;)

고토부키 나나세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고 넘어가야겠네요.
히로인이라고도 부르고 싶을 정도로 분발했습니다. 
문학소녀시리즈가 평범한 라이트노벨이었다면, 나나세와 코노하가 맺어진 채로
끝나는게 나았을 지 모르겠습니다.  스토리상의 지원을 아낌없이 매력적이도록
지원받은 츤데레 히로인이라... 확실히 마지막에까지 나나세를 응원하신 분들이
더 많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츤데레의 인기는 한 물 갔다고 하면... 물매 맞을까요? ^^;;; (미리 도망)
고토부키의 매력은 '나와 동등하게 서 있는 올곧은 천사표 츤데레'라는 말로 표현
할 만한데  그녀도 더럽혀진 천사 편에서 토오코에 상응할 만한 서사성을 부여받
았고,  통칭 '츤데레와 얀데레의 대전' 편에서 미우와의 대결로 많은 지지를 끌어
올리긴 했지만 어쩐지 그녀는 거쳐가는 사건들 속에서 단선적인 느낌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아까웠습니다.
이 정도면 다른 이야기에서 충분히 히로인을 꿰차고도 남을만한 아이인데 말이
죠. ^^
그렇지만 좀 냉정하게 말하면 올곧게 나를 위해주는 츤데레 미소녀는 굳이 '문학
소녀'가 아니라고 해도 많은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 비해 긴 생머리를 땋고 포용력있고 자상하고 치유계의 고풍스러운 단아한
미녀까지는 좋은데, 납작가슴에 의외로 푼수기질이라 짓궃게 놀려주고 싶은데다
가, 겁쟁이에 책장을 하나하나 씹어먹다가도 마음먹은게 얼굴에 다 드러나는 히로
인, 거기다 더해서 핵심적으로 문.학.소.녀.인 히로인은 '문학소녀 시리즈'여야만
합니다. 
물론 그녀의 유형은 어떤 분들께서 지적하시길 19세기 말의 소련의 문호들에 의
해서 묘사된 성스러운 창녀의 모티브의 변형이라고 하셨긴 했습니다만, 그런
고전적인 유형이 현대의 우리들이 쉽게 접할만한 라이트 노벨에서 제대로 구현
된 것은 아마노 토오코가 괄목할 만하다고 저는 봅니다.
흔히들 보는 라이트 노벨에서 주로 묘사되는 문학/독서광의 미쇼녀는 대부분
책에만 파뭍혀서 과장되게 음침하도록, 혹은 지나치게 자신만의 세계속에서 주인
공을 당황하게 만드는 식으로 묘사되어, 급기에 과장된 개그 요소로 밖에 묘사되
지 못했던 감도 없지 않습니다.  그나마 이렇게 사랑스럽게 묘사된 캐릭터를 꼽
으라면 R.O.D.의 요미로 리드먼 정도가 있겠지만, 그녀는 '문학'의 힘을 빌리기
보다는 '종이'의 물리력으로 주변의 난관을 타개해 나가곤 했죠. 
그렇기에 '문학소녀'라는 캐릭터의 유형은 아마노 토오코에 와서야 완성되었다고
감히 주장해 봅니다.  (마치 '진정한 메이드 캐릭은 엠마에 와서 완성되었다'고
주장하는 기분이네요. ^^;;;)

이야기의 마지막 권에서는 확실히 전에서 언급한 불안 요소들이 아주 만개(?)해
버리는 바람에 저는 다소 실망스럽게 보였습니다.  얀데레 백합의 무서움(?)을
아주 지대로 보여주신 카나코 여사님이 최후의 보스로 버티자, 이 막강한 보스를
공략하기 위하여 다소 조악한 수준의 근거를 토대로 명탐정이 현신한 듯이 전말을
척척 전개해 버리는 아사쿠라 코노하의 모습에서 '데우스 마키나'의 절정을 보았
달까요?  그러나, 그런 제 투덜거림은 이후의 전개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제가 맨 처음 도입부에서 적은 그런 '어머니나 아내와는 또 다른 남자의 인생에서
소중한 이성'이라고, 혹은 혹자의 지적대로 '성스러운 창녀'라는 범주에 어울리는
그런 토오코가 아사쿠라 코노하라는 작가를 해산하는 고통을 짜내면서 세상에
내어 놓고, 그녀의 탯줄을 마저 끊지 못해서 고통스러워 하고 설워하는 코노하의
모습에서 저는 웬지 모를 절절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냥 남녀간의 사랑?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런 요소를 부정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앙드레 지드가 그의 아내 마들렌을 보았다던 그런 비틀어
진 감정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을 포함하고 그것을 덮을 수 있는 무언가
또 다른 포근한 사랑의 다른 한 감정이란 것이 느껴지기에  저는 감동 할 수 있었
습니다.
아마 요즘 세대의 요즘의 라이트 노벨들에 익숙하신 분들께는 아주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일 지도 모르겠군요.  그냥 그대로 그녀는 과거의 좋은 선배로 끊어
버리고 고토부키를 나나세라고 부르러 가서 머플러 대신에 새로운 것이라도
둘러주는 것이 그 분들께는 더 기뻐하실 전개일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랬다면 저는 이 작품이 그렇게 특별하게 기억되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이 작품에서 포만감을 느끼며 책을 덮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예 라이트 노벨이라는 범주를 의식하지 말고
조금 더 '숨기는 미'를 발휘해 본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설명과 자신의 기분에 대한 묘사가 구구절절 장황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노련한 작가는 그런 것을 함축적으로 한 두 문장, 혹은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멋들어 지게 잘 설명하거나, 혹은 궁금한 이야기인 채로 끊어두고, 독자들의
상상속에서 전개시킬 몇 가지 장치를 마련하고 나서 그걸 이미 사실로 간주
해 버린 채 그냥 전개 해버리기도 하는 등등 아주 글 덩어리를 재치있게 잘
요리하는 느낌이 아는데, 문학소녀는 그런 점에서는 좀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감정의 격류를 반복 의성어나 외침으로 페이지를 채우는 방법같은
것도 좀 세련되지 못한 방법 같습니다.  
이상의 잔소리들은 아마 저보다 작가가 잘 알고 있을 문제겠죠.

제가 어릴 때 본 서양의 '문학소녀'들은 정말 씩씩하고 활달했습니다.
말괄량이 조우나 빨강머리 앤은 태양같은 소녀들이었죠.
그런데 거기에 상응하는 동양의 '문학소녀'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아마노 토오코 같은 달같은 소녀들 말입니다.
라이트 노벨 특유의 그것때문에 조금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만
그래도 이번 만남은 반가운 만남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께 권해보고 싶네요.

"장마 진 날의 창가에서, 혹은 바람부는 가을 날에 '문학소녀'는 어떠신지요?"


P.S. 그러고보니 이 이야기가 애니화 된다고 하더군요.  거기다가 제작사가 IG라니요. ^^
무척이나 기대됩니다.  아마노 토오코의 성우로는 노토 마미코씨나 사카모토 마아야씨나
쿠와시마 호우코씨였으면 하는 기대가 생기네요. ^^

by Joshua77 | 2009/07/25 15:43 | 소설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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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Ezdragon at 2009/08/11 02:21
문학소녀 시리즈를 보면서 '라노베라는 장르도 이 정도 수준에 이르렀구나..,'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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